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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타고 오는 초인 허형식 장군 78주기 추모제 거행

기사입력 2020.07.2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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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회장 이수연) 회원 10여명은 지난해 8월 3일 경북 구미에서 수륙만리 멀고도 먼 중국 흑룡강성 경안현 대라진 현지 희생기념비까지 찾아가 77년만에 고향 선산들판에서 거둔 쌀과 고국에서 빚은 소주로 젯밥과 제주를 드리면서 합동으로 제사를 올렸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민문연 중국 현지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워 허 장군의 생가(구미 임은동 264) 앞 왕산허위선생기념공원(임은동(266번지)에서 8월 2일 오전 11시에 허 장군의 78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허형식 장군은 경북 구미의 독립운동 명문가 왕산 허위(대한민국장) 가문의 범산 허형의 동생인 시산(是山) 허필(건국포장)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3도 창의군 총대장 왕산 허위 의병대장 순국 후 임은 허씨 가문 전체가 만주로 집단 망명길에 함께 따라가 만주에서 자랐다.

     

    1930년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관 습격사건 이후 허형식은 북만에서 항일 명장으로 떠오르게 된다. 1934년 6월 28일 주하유격대를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재편성하게 되자 제3단 정치위원에 임명됐으며, 그 해 가을에 제1대대 대대장이 됐다. 1935년 1월 합동유격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제1사로 편성되자 제2단(연대)장이 됐으며 유수하자(柳樹河子) 전투, 소량수하자(小亮水河子)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일본군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고를 올리며 항일연군의 최고위급 지도자로 우뚝 선 그는 1939년 4월에는 동북항일연군 3로군 총참모장 겸 제3군장에 임명됐으며, 1940년 봄 제3로군 제12지대 정치위원이 되었고 9월 풍락진(豊樂進)전투에 참전했다.

     

    특히 그는 동북항일연군 3로군 기병부대를 이끌 당시 백마를 타고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1년 일본의 토벌에 맞서 항일연군 제9·12지대에서 유격활동을 계속하던 중 이듬해인 1942년 8월 3일 북만주 경성현(慶城縣)에서 전사했다.

     

    당시 그는 동북항일연군의 유일한 남한 출신 지휘관으로 300여 회 전투를 통해 27개 도시를 점령하고 일본군과 경찰 1557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저항시인 이육사(1904∼1944)의 시 `광야'에 등장하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실제 만주에서 백마를 타고 무장 항일투쟁을 벌였던 허형식(許亨植) 장군이라고 학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허형식 장군은 육사 어머니 허길의 사촌 동생으로 만주벌판에서 항일투쟁을 하며 육사를 만났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허 장군을 항일영웅열사 300인에 포함하여 그를 기리고 있으며 한국사학회장을 지낸 바 있는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는 “만약 허형식 장군이 희생되지 않았다면, 이 분은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개인적으로 꼭 포상해야 할 사람은 바로 허형식”이라고 꼽은 적이 있다.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에서 허형식 장군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으며 보훈처에서 심사가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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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성 기자 gumi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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